멸문 전날, 배신자가 죽었다

3화. 향로를 깨뜨린 죄

검끝 스무 자루가 그를 향해 있었다.

향로에서 떨어지라는 외침은 아무에게도 닿지 않았다. 제자들이 원을 좁혔고 장로들의 검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흰 천에 덮인 백도현의 시신만 그 사이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

“검을 내려놓아라.”

내무 장로였다. 목소리에 분노는 없었다. 그것이 더 나빴다. 위조 서신, 시체의 손에서 나온 제자패, 기억이 없다는 자백. 그 셋만 놓고 보면 자신이라도 눈앞의 사내를 의심했을 것이다.

서진하는 내려놓지 않았다.

검을 놓는 순간에도 향로는 계속 탄다. 군중 뒤에서 흰 연기가 낮게 깔리며 바람을 따라 연무장 안쪽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앞줄 제자들의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었다. 열일곱 해 동안 그는 저 눈을 여러 번 보았다. 흑천회의 고문방에서 교란향을 마신 자들의 눈이 꼭 저랬다.

“사부님. 저 향로부터 보십시오.”

유정문은 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검도 칼집에서 반쯤 나와 있었다.

약당주가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진하야, 숨을 고르거라. 지금 네 눈에 보이는 것은 진짜가 아니다.”

말로는 이길 수 없었다. 여기서 한 마디를 더 보태면 주화입마의 증거가 될 뿐이었다.

서진하는 거리를 쟀다. 향로까지 열다섯 걸음. 사이에 선 사람이 아홉. 그중 검을 제대로 쥔 자는 넷.

그리고 하나를 더 셈했다. 이 자리에서 누구의 피든 흐르면, 위조 서신은 그 순간 진짜가 된다. 사람을 베면 안 된다. 단 한 명도.

그는 검을 뒤로 뉘였다.

“막으십시오. 대신 죽이지는 마십시오.”

내무 장로가 명했다. 그의 검이 먼저 들어왔다. 서진하는 피하지 않고 칼등으로 받아 흘렸다. 팔이 저렸다. 삼류의 몸이 감당할 힘이 아니었다. 그는 뒤로 물러나며 병기 거치대를 어깨로 밀었다. 목검 수십 자루가 쏟아져 발치를 덮었다.

역류심법의 첫 구결을 따라 숨을 거꾸로 짚었다. 경맥이 바늘로 긁히는 듯했다.

흐름이 보였다.

앞을 막은 제자의 기운은 어깨에서 팔로 뻗어 나가다 셋을 세는 사이에 끊겼다. 강한 자세일수록 다음 동작을 위한 호흡이 필요했다. 도망치며 배운 것은 그것 하나였다. 이길 수 없는 자에게도 반드시 숨을 고르는 순간이 있다.

“지금.”

그는 끊긴 자리로 몸을 밀어 넣었다. 벤 것이 아니라 지나간 것이었다. 두 번째 검은 옆구리를 스쳤다. 뜨거운 것이 도포 안으로 번졌지만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세 번째 제자에게는 발밑의 흙을 걷어차 시야를 가렸다.

여섯 걸음.

바람이 방향을 바꿨다. 연기가 그의 얼굴로 밀려왔다. 서진하는 숨을 끊고 마지막 세 걸음을 뛰었다.

향로 앞에 선 자는 없었다. 아무도 그것을 지키지 않았다. 지킬 필요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검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쇠 받침이 갈라지고 향로가 두 쪽으로 벌어졌다. 벌겋게 달아오른 재가 돌바닥에 쏟아졌다. 서진하는 곧바로 옆의 물통을 걷어찼다. 물이 재를 덮었다. 흰 연기가 꺼지고 젖은 재의 시큼한 냄새만 남았다.

그 순간 가슴 안에서 무언가가 터졌다.

거꾸로 끌어올린 기운이 되돌아 내려오며 경맥을 훑었다. 서진하는 무릎을 꿇고 피를 토했다. 검붉은 덩이가 젖은 재 위에 떨어졌다. 눈앞이 하얗게 번졌다가 천천히 돌아왔다.

그리고 연무장이 무너졌다.

향을 깊이 마신 제자들이 먼저였다. 한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옆의 동료를 흑천회라고 외쳤다. 다른 하나는 허공에 검을 휘두르다 제 다리를 그었다. 내공을 끌어 올리려던 내문 제자 둘이 동시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향로를 깨뜨린 뒤였는데도 이미 몸에 들어간 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수라장이었다.

“숨을 참아라!”

서진하는 젖은 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바람 위쪽으로 물러나! 도포 자락을 물에 적셔 코를 막아라! 검은 땅에 꽂고 사람에게 겨누지 마라!”

그는 검을 들지 않았다. 달려드는 어린 제자의 손목을 비틀어 목검을 떨어뜨리고, 발을 걸어 넘어뜨린 뒤 무릎으로 눌렀다. 등 뒤에서 날아든 칼날은 물통 뚜껑으로 받아냈다. 열일곱 해 동안 이보다 나쁜 자리에서도 살아남았다. 다만 그때는 베어 넘기면 됐고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약당주가 군중을 헤치고 들어왔다.

“눕혀라. 고개를 옆으로.”

그는 쓰러진 제자들의 혀를 눌러 숨길을 열고 목덜미에 침을 놓았다. 소매에서 꺼낸 환약을 하나씩 물렸다. 손끝은 정확했고 망설임이 없었다. 실제로 두 사람의 호흡이 곧 잦아들었고 한 사람은 눈의 초점을 되찾았다. 서진하는 그 손을 보면서, 그 손이 만든 해독환에 방금 전 사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함께 떠올렸다.

“장문인!”

내무 장로가 소리쳤다.

“저자가 향로를 부수고 문파의 물건을 파괴했으며 스무 명 앞에서 장로에게 검을 들었습니다. 지금 목을 치지 않으면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합니다.”

“내무.”

유정문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서진하가 벤 사람이 있느냐.”

내무 장로가 말을 멈췄다.

“쓰러진 자들을 세어 보아라. 벤 상처가 하나라도 있는지.”

없었다. 상처를 입은 자는 넘어지며 찢긴 자들과 제 검에 다친 자들뿐이었다. 서진하 자신의 옆구리에서만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결백해지는 것은 아니다.”

유정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다만 죽이면 확인할 수 없다.”

그때 산길 쪽에서 횃불이 흔들렸다.

해는 이미 넘어가 있었다. 곽칠성이 절뚝이며 앞장섰고 외문 제자 넷이 뒤를 따랐다. 그 뒤에 윤하린이 있었다. 옥색 검복 아래가 붉은 흙으로 젖어 있었고 소매 한쪽이 없었다. 그녀는 팔로 어린 여자를 부축하고 있었다. 동백이 누이의 손을 놓지 않았다.

윤하린은 서진하를 보고도 달려오지 않았다. 먼저 유정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북쪽 폐사당, 배수로로 진입했습니다. 흑천회 잔당 여섯 중 넷을 제압하고 둘은 산 아래로 달아났습니다. 돌아오는 데 한 시진 반이 걸렸습니다.”

그녀는 등에 진 자루를 풀었다.

“안쪽 창고에서 나온 것입니다.”

봉인된 향통 열한 개. 그리고 기름종이에 싼 도면 한 장이었다. 낮에 서진하가 가져온 구조도의 나머지 절반이었다. 잘린 단면이 정확히 맞물렸다.

“연무장, 후문, 약재창고, 종루에 표시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도면에는 세 잎 문양이 없습니다.”

“인질은.”

유정문이 물었다.

동백의 누이가 앞으로 나섰다. 목소리가 떨렸지만 말은 끊기지 않았다.

“닷새 전에 약재 수레에 실려 갔습니다. 그자들이 폐사당에서 향통을 열고 검푸른 가루를 섞는 것을 봤습니다. 마른 풀 냄새가 아니라 단내가 났습니다. 다 섞은 뒤에는 문파 표식을 찍었습니다. 제 동생에게 시킨 것과 같은 통이었습니다.”

연무장이 조용해졌다.

“장문인.”

윤하린이 젖은 재를 가리켰다.

“저 재를 확인해 주십시오. 폐사당의 향통과 같은 것이라면, 오늘 저녁 이 자리에서 피운 것은 안정향이 아닙니다.”

유정문이 약당주를 보았다.

“약당주. 그대의 소견은.”

노인은 젖은 재를 손끝으로 비벼 냄새를 맡았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안정향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 섞여 있습니다. 망혼초입니다. 이 양을 저녁 내내 피웠다면 내일 아침 문파의 절반이 운기를 못 했을 겁니다.”

말이 끝나기 전에 술렁임이 번졌다. 제자들이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방금까지 서진하를 겨눴던 검들이 하나둘 내려갔다.

향은 실제 무기였다. 그것이 문파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증명된 순간이었다.

“그래도 이자가 향에 망혼초가 섞였다는 것을 어떻게 미리 알았는지는 남습니다.”

내무 장로가 물러서지 않았다.

“아는 자는 넣은 자입니다.”

대답할 말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그 말을 하려면 지워진 기억부터 설명해야 했고, 서진하는 그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때 동백이 깨진 향로 앞에 쪼그려 앉았다.

“여기 뭐가 있어요.”

그을음 사이에서 나온 것은 검은 실매듭이었다. 명주실을 세 번 꼬아 묶은 작은 매듭. 향통을 봉인하는 삼끈도, 약낭을 조이는 세 잎 인장이 찍힌 끈도 아니었다. 재 위에 놓인 그것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본 적 있는 사람은.”

유정문이 물었지만 나서는 자가 없었다. 약당주도 고개를 저었다.

“저희 약당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약당에 드나드는 사람이 많으니 단정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것도 저자가 넣었을 수 있습니다.”

내무 장로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다.”

유정문이 그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매듭을 천에 싸 봉인했다.

“백도현을 죽인 자를 밝히기 전까지 이 문파는 아무것도 확정하지 않는다.”

그는 서진하를 내려다보았다.

“서진하. 오늘 향을 막은 공은 기록한다. 그러나 위조 서신과 제자패, 지워진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 독방에 가둔다.”

“장문인!”

윤하린이 일어섰다.

“사형이 아니었으면 저 향은 밤새 탔습니다.”

“그래서 살려 두는 것이다.”

서진하는 사매의 소매를 붙잡아 앉혔다. 지금 자신을 풀어 주면 사부까지 의심받는다. 그것을 노리는 자가 이 자리 어딘가에 서 있었다.

“가겠습니다.”

그는 검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옆구리가 다시 벌어졌다.

“하린아. 젖은 재를 씻지 말고 그대로 봉해 둬라. 향통도 하나도 열지 마라.”

“그 정도는 나도 안다고요.”

윤하린의 목소리가 끝에서 갈라졌다.

독방은 연무장 북쪽 돌집이었다. 창은 없고 문 위쪽에 손바닥만 한 환기구 하나가 뚫려 있었다. 경비 둘이 빗장을 걸고 멀어졌다.

서진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옆구리를 누르자 손바닥이 끈적했다. 오늘 하루 동안 그는 소년 하나와 그 누이를 살렸고, 문파의 절반이 운기를 잃을 밤을 막았다. 전생에서는 하나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백도현을 죽인 자는 아직 이 안에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역류심법의 구결을 짚자 가슴이 다시 저릿했다.

그때 코끝에 무언가가 스쳤다.

아주 가늘고, 아주 익숙한 냄새였다.

환기구 아래에 흰 실 같은 연기가 스며들고 있었다.

은은한 단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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